2020. 12. 25. 18:18ㆍ정보
1848년,
인류는 그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으며,
인류의 발생 이래에 최초로 거대 도시가 생겨났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며, 인구 밀도가 높고,
문명이 발달한 국가,
바로 런던이었다.
런던 시민들이 한창 꿈을 펼치고 있을 때,
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수백만명의 런던 시민이 생산한 변뇨는 통제가 되지 않았고,
길거리는 숨막히는 악취만이 가득했다.
이는 병균의 매게체가 되어 사람들을 감염 시킨다.
결국 어린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런던의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기 시작한다.
런던은 당연히 대책을 강구해야 했고
한 한 사람이 나서게 된다.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그의 이름은 "조셉 바젤제트."
그는 그를 몰라주는 빅토리아시대의 잔재 틀딱들에 맞서서
영국 최대의 토목 공사를 벌이려 하고 있다.
이 맘때 즈음 도시는 무형의 살인마,
콜레라가 활개치고 있었고
이는 흑사병 이후 최악의 전염병으로 손꼽힌다...
당시 의학계에서는
치유법도, 원인도, 매게체도 몰랐지만 단 한가지
런던의 하수구가 막히면서 콜레라가 시작되었다는 점은 추측할 수 있었다.
런던의 대표적인 강인 템스는 아예 갈색으로 물들었고,
수많은 질병들을 도시 전체로 확산시키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에서는 '시 하수 위원회'를 설립했지만
탁상공론과 소모적인 말싸움만 일삼았던
이들에게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강구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들도 딱 한가지 잘한 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조셉 바잘제트를 고용한 것이다.
그는 하수도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믿고 하수구를 일일이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수구는 지표수를 나르던 수단으로서
오물은 개판으로 버려지기 쉽상이었다.
거기에 수세식 변소는 사람의 변을 직접적으로 하수도로 내려보냈고
배수구는 한도초과를 직면한다..
한도가 초과된 하수구 밖으로 오수는 흘러넘쳤고
전 런던의 지하실과 화장실은 오물에 잠겨버리기 시작한다.
뺴애애액! 못살겠다 하며
하층민들부터 시작하여 신문사 Times에 이 문제를 제기하고
바잘제트는 이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 제시를 받았으나
도움은 되지 않았다.
병은 계속 퍼져 하루에도 수백명을 감염시켰는데,
이 무렵 런던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의료계 인사들은 물론
좆문가들도 등판하여 한다는 말이
악취를 일명 '독기'라 지정하여 질병이라 선동하고 다녔다.
호오 그렇다면...?
악취를 몰아내면 질병도 없당께요!!!
그야말로 최악의 판단을 하게 된다.
이런 미친 요구는 신박한 아이디어로 받아드려지고
사망자 수는 줄기는 커녕 더욱 증가하기 시작했다
설사와 동반된 간 기능 저하와 피부색 변화는
콜레라의 상징이 되었고,
환자는 48시간 이내로 사망하였다.
급기아 너무 많은 사망으로 인해
런던의 묘지가 모자라게 되고
시체를 처리하지 못한 자들은 악취를 막고자
양파를 썰어 그 주위에 놓고 시체와 같이 생활하였다.
이런 잘못된 믿음과 늑장 대처는 런던에서
1만 4천명의 사망자를 내었고
콜레라의 원인이나 치유법에 대해서는 아직도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제대로 된 의사가 독기 이론을
전면 반박하기 시작했으니
그게 바로 존 스노우 되시겠다.
그는 비슷한 지역에 사는 두 마을 거주자들 표본을 모아,
한 지역에서만 수많은 사망자가 나온 것을 근거로,
모두가 같이 마셨던 악취는 변수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존 스노우와 조셉 바젤제트는 콜레라 퇴치의 쌍두마차가 되어간다.
1949년, 콜레라의 악몽이 한풀 꺾였다고 생각했지만,
그 4년 뒤인 1853년 콜레라는 다시한번 런던을 덮친다.
존 스노우는 이번에야 말로 콜레라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 생각하며,
콜레라로 인해 죽은 가족들의 집을 조사해본다.
그 결과 브로드가의 한 지역에서만
유별나게 엄청난 죽음이 있었음을 발견
공통점으로는 단 한가지 우물에서 물을 퍼 마셨다는 점을 찾았다.
장교는 물론이고
커피숍 고객
그 우물의 물을 마신 이들은 단체 사망..
그 우물의 물이 아닌 맥주만 마신 양조장 직원은 멀-쩡
독기 악취때문이 아니라니까!!!!!!!!
콜레라는 수인성 전염병이다!!!!!!!!!
콜레라가 수인성이라는 스노우의 이론은
너무나도 급진적인 것이었고
의료계의 뭇매를 맞게 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 못받아드리겠당께!!
. . . . . .아이 엠 그루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노우는 펌프를 사용 금지 시켰고
그 지역의 병은 사라지기 시작!
의료계에서는 이렇게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한편 바잘제트는 노가다꾼이 되어
진성 기술자의 길을 걷고 있었고
하수구의 설계와 착공을 앞두고 있었다.
그가 사용한 원리는 중력
그는 템스강으로 빠져나가던 분뇨의 스케일을
바다까지 키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탈의 경사도를 계산하여
하수구가 막히거나 닳는 일이 없도록 해야 했고
하수구를 강 밑으로 짓는 만큼
이 하수를 다시 퍼올려 강 하류 >> 바다
로 나가게 해야 하는데
런던은 아직 이런 정도의 기술력이 없었다.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하수를 통제하여
밀물과 썰물에 맞추어 바다로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또한 어디서 하수를 뿌릴지도 관건이였는데,
우리나라의 누구와는 달리 바젤제트는
혈세를 낭비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연구와 조사의 끝, 1856년
그리하여 완성한 그의 계획은
헴스테드, 노팅힐, 첼시로부터 시작하는
세개의 하수구를 건설하여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오수를 바다로 흘려보내자는 것
이렇게 시작된 바젤제트의 계획은
당시 최대의 토목사업이 되었고
안정성과 효율성을 모두 잡는 최적의 형태를 필요로 했다
바잘제트의 설계도는 학계에서 인정받았지만
다시한번 문제가 된 것은 탁상공론의 행정부였다.
심지어는 언론에서도 바잘제트를 혹평하기 바빴고
5번에 걸친 재설계에도 영국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런던의 오수는 전염병을 확산시키고 있었다.
1858년의 웨스트민스터의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는데,
악취 + 더위 콜라보는 런던 전역의 사람들을 덮쳤다.
의회는 나몰라라 런던을 피해 달아났다.
결국 의회는 마지막 보루로 바잘제트의 계획을 이행하였고,
1859년,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다.
드디어 바젤제트가 고대하던 런던 하수구 공사 시작!
이 엄청난 토목 공사는
삽과 곡괭이만을 든 인부 약 2만여명으로 진행되었고
특히 갱도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무 버팀목 하나만으로 버텨가면서 일을 했다.
특히 당시 공사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런던 시 전부를 떠받칠 콘크리트의 강도.
시멘트의 강도가 이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적인 요소였지만,
바잘제트는 모험을 하기로 한다.
포틀랜드 시멘트는 물에 닿으면 굳게 되니
하수구에 사용하기 적합했고,
강도 또한 튼튼하여 여러 세대에 걸처 유지가 될 것이기 때문!
하지만 이 시멘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혼합률의 변경에 따른 강도의 변화.
이에 바잘제트는 각 혼합 샘플을 만들어
시멘트를 일일이 관리하는 품질관리체계를 만들어냈고
하수구 사업은 순항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공사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중단되는데
바로 노동자들의 인상요구 파업 때문.
바잘제트에게는 이 노동자들을 신경 쓸 틈이 없어
그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지만
쇼어디치에서는 가스 폭발 사고가 나는가 하면
지하철 바로 옆에서 공사하던 하수구 노가다꾼들이
사고로 붕괴된 벽에
오수가 범람하는 등,
사고가 계속 되었다.
특히나 바잘제트에게 치명타를 먹인 것은
런던 남부 탬트포드 하수구에서의
노가다들 단체 사망.
6명이 생매장 당했고
그중 3명 구출, 2 사망 확인,
그리고 1 실종을 기록하게 된다.
사실 그때 당시 이 정도 사고는 다반사였지만
타임즈지를 포함한 기사들은 바잘제트에게 호의적이지 못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바잘제트는
언론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했고
두개의 터널이 합류하는
당시로써는 전무후무한 공사 업적을 보여주기로 한다.
과연 바잘제트의 철두철미한 계산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두 터널을 이었고
이렇게 3대 터널이 합쳐지자
오물들은 한곳에 모이게 되어
바다로 배출 되었다.
이를 위한 마지막 관문은 한때 모인 오물을 퍼올릴 동력.
바잘제트는 당대 최고의 엔진 제작사였던
제임스 와트사와 협력하여
당대 최고의 엔진을 만들어 내었고
하수를 저장소로 퍼올려
썰물과 밀물에 맞추어 바다로 자연스럽게 배출된다.
엔진은 대 성공이었고
이렇게 오수가 흘러 나감으로써 악취가 사라지니
콜레라의 위기에서 런던은 구출 된 듯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콜레라는 재발했고
악취의 근원이 사라졌는데 재발하는 콜레라는
그간 의료계가 틀렸음을 증명했다.
라는 의문을 가지고
다시한번 의료계는 조사에 나선다.
해당 지역의 지리 역학조사를 통해 의료진들은
식수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는데
식수로 사용되는 저수지를 여과하는 회사에서
구라를 친 것을 발견
병의 원인은 악취가 아닌 수인성 질환!
무지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걸 실감한다.
콜레라에 대한 새로운 보건 정책이 나오게 되었고
불행히도 이런 생각을 처음 하고 그에 맞는
정책과 대안을 제시했던 존 스노우의 이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콜레라로 죽은 이후 8년 뒤에 사실로 입증되었다.
바잘제트의 하수도는 악취와 전염병 해소를 했을 뿐만 아니라
1867년 7월 26일 내린 역대급 폭우를
당시 최대의 토목공사 사업이었던 방조제를 통해
흘려보내게 된다.
바잘제트는 이후에도 수많은 토목공사에 중용되어
현대의 런던, 그 자체를 건설해냈다.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글에서 살아남기 (607) | 2021.01.02 |
---|---|
오리너구리는 참 신기해 (583) | 2020.12.25 |
인류의 전염병 전쟁 역사를 알아보자 (568) | 2020.12.24 |
전기 없는 북한의 밤 (585) | 2020.12.12 |
북한 동물원을 알아보자 (927) | 2020.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