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당시 중국이 역대급으로 착해진 사건
2021. 12. 12. 20:32ㆍ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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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황허강 대홍수...
일본군이 허난성으로 진격하고 카이펑이 함락당하자
(북송의 수도이자 역사적인 도시)
허난성의 수도인 정저우가 일본군에 의해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가 되었음
당시 중국군의 역량으로는 일본군을 제지할 수 없었기에
장개석은 결국 제방을 터트리고
일본군의 공격을 저지하려고 계획을 세움
1938년 6월 7일 중국군은 제방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2일 뒤인 9일날 제방은 터진다.
터진 제방에서 물이 밑도 끝도 없이 대홍수를 일으켰고
대륙의 스케일답게 한반도보다 큰 땅덩어리가 홍수로 잠겨버림
(중국만이 아니라 세계 역사상 최대의 수공 공격이라고 한다)
이에 장저우로 진격하던 일본군 2개사단은
홍수로 인해 진격이 멈춰지고 몇몇 부대는 홍수에 휩쓸리기도 했음
대홍수에 휩쓸린 일본군 기갑부대
홍수로 인해 진격을 멈춘 일본군 부대
일본군 2개 사단 약 7만명의 병력은
완전히 홍수로 인해 발이 묶여버렸다
여기까지만 보면 수공은 대성공하고
일본군의 진격을 저지한것으로 보였다.
결과:사망자 89만명 이재민 1200만명...
이 홍수로 인해 발생된 공식적인 집계
일본군 2개 사단의 진격을 저지하려고
대홍수를 일으켜 무려 1300만의
중국인을 제물로 바친것이다...
악마 같은 나치독일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중국에게 맹비난을 퍼부었다.
중국의 당시 공식 발표는 일본군의 공습으로 인해
제방이 터져 대홍수가 났다고 발표했을뿐이다.
오히려 일본군이 중국인들을 구하고 다닐 정도로
당시의 상황이 열악했다
(물론 홍수 지역이 대부분 일본군 점령지였으니 그랬겠지만)
그러고 설상가상으로 이 홍수를 터트려서
저지했다고 생각했던 일본군은
홍수지역을 우회해서 결국 우한과 장저우를 함락하고 점령한다...
그러나 홍수의 영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허난성 대기근
이 홍수의 피해로 허난성은
1942년에 무려 300만명이 아사했다
평가:전술적으로는 중국군으로서는 막기 힘든
일본군의 공격도 잠시 저지하고
몇몇부대에게는 큰 피해를 줬으나
일본군 몇개 부대를 저지하고자
중국 바퀴글 1000만명을 희생시킨
희대의 팀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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