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용 소이탄과 고폭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021. 2. 18. 17:01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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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차 세계 전쟁

국가의 모든 인력,

산업시설이 전쟁에 동원되는

총력전의 양상이 나타난다.



이에 독일 제국은 영국의 본토에

폭격을 가해 전쟁의지를 꺾고,
산업시설을 폭격한다는 원시적인 수준의

전략 폭격을 계획하는데

이 계획을 위해 비행선이 동원된다.

저런 뚱뚱한걸로 무슨 폭격을해?
영국 가기도 전에 다 터지는거 아니야?


 

우리의 인식에 보통 비행선이라면

굼뜨고, 면적이 넓어

떠다니는 표적이라 생각해

폭격기로 적합하지 않을것 같지만




의외로

시속 백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빠른 기동성을 가졌고,
워낙 거대한 덩치 때문에

당시 전투기의 기총 수백발을 맞아도

작은 구멍만 생길뿐
유효한 타격을 받지 않았다.

 

또한,

당시 원시적인 폭격기들에 비해

수십배에 달하는 폭탄을

적재할 수 있었으므로
폭격을 담당하는데

큰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페르디난드 아돌프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폰 체펠린 백작
체펠린 백작이 비행선을 발명한 뒤로 비행선은 
독일 제국의 상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독일 제국의 상징인 비행선이

대영제국의 심장을 공격한다"
라는 정치적인 효과도 매우 컸다.






그리하여,
1915년 5월 31일을 시작으로

독일 제국은 런던에 폭격을 가한다.





하지만,

막상 폭격하고 보니 별로 타격이 없었다.

게다가 영국 공군이

폭격기로 비행선 바로 위에서
폭탄을 떨구는 식으로 대응하자

비행선은 복엽기들이

기동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고도까지 올라가야만 했고,
폭격 정확도는 처참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처참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의 상황은 달랐는데

수백개의 폭탄중 한발만 민가로 떨어져도

언제 폭탄이 떨어질줄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에
영국에서는 반전 여론이 들끓고,

정부 지지율이 낮아졌지만

독일에서는 프로파간다가 되어

독일 제국 전역에 독일이

전쟁에서 우세하다고 퍼져나갔다.



이는 별로 큰 일처럼 보이지 않을수도 있지만,
전 국민들이 동원되는 총력전의 특성상

국민들이 전쟁을 지지해주는 것이 

전세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했다.


때문에 영국은 최대한 비행선을 막아보려했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들이 점점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다.


기존 방식대로
영국 폭격기들이 비행선에 폭격을 하려면

비행선에 아주 근접해야 했는데,

비행선은 그야말로 공중 포대와 다름없었기 때문에
영국 폭격기들은 대공포화를 맞아야 했으며

당시 엔진기술의 한계 때문에

고고도에서는 엔진이 굼떠져서

비행선에 근접하기는 더욱 힘들었다. 

 

때문에 영국은 날랜 소형 전투기로도

비행선을 격추 시킬수 있는 신무기

연구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그 과정을 통하며,

거대한 비행선을 효과적으로 격추하려면

비행선 내부의 수소에 불을 붙여
폭파시켜야 한다는

이론쪽으로 의견이 수렴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

불을 뿜는 총알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고
영국의 무기개발자들은

비행선을 격추시킬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는데.......

자동차 개발업자이던 

제임스 버킹엄이 매우 간단한 방식으로 
불을 뿜는 최초의 소이탄을 개발한다.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소이탄은

그에 의해서 복잡한 기술력은

하나도 필요없을 정도로

간단한 방식으로 만들어 졌는데,

총알에 구멍을 뚤어 산소에

접촉만 해도 불이 붙는 인을 넣고,
그 구멍을 납땜으로 막으면

총알이 발사될때, 총알이 강선과 마찰하며 회전하면 이 납땜이 녹아

인이 밖으로 조금씩 흘러 나와 불이 붙는
매우 간단한 방법이였다.

영국은 이 기막힌 발명품을

바로 실전에 투입한다.


그러나

독일의 비행선이 다시

런던에 출몰했을때,

영국 전투기들은 수백발의 소이탄을

비행선에 박아넣었지만,

비행선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애써 만든 소이탄이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하는걸 본 영국은 
그 원인을 찾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는데

소이탄이 비행선에 적중하더라도

내부의 수소가 폭발하려면

필요한 산소가 부족했기 때문이였다.

영국 전투기들이 소이탄을 박아넣어도

비행선에는 작은 구멍만 났고,


이 거대한 비행선 안으로

공기가 쏟아지려면

아주 큰 구멍이 뚫려야했다.

조금이라도 지체될수록

런던은 언제 떨어질줄 모르는

공습에 떨어야 했기 때문에

영국은 비행선에 큰 구멍을 낼 수있는 새로운

폭발하는 총알을 개발해야만 했다.
하지만,


저 조그마한 총알에 대공포에서

발사하는 포탄들 처럼
신관을 넣을 수도 없었기에

영국의 무기 개발자들은

큰 고민에 빠지게 된다.


때문에 영국의 공학자들은 온갖 방법들을

시도하면서 폭발하는 탄환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또 혁신적인 발명품이 탄생한다.

이 폭발하는 총알에는 오직 민감한 폭발물인

니트로 글리세린과 조그만 쇠구슬만 사용되었는데,

총알이 발사되어서 비행선의 외피에 맞으면

총알은 느려지지만,

쇠구슬은 관성에 의해

계속 앞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니트로 글리세린을 자극시켜

폭발을 일으키는
아주 간단하지만 획기적인 구조였다


이 고폭탄에 크게 만족한 영국은

곧바로 이를 실전에 투입한다.




고폭탄과 소이탄을 번갈아서

장전해 화력을 극대화시키고,
예비용으로 몇개씩 탄창을 들고

출동한 영국 공군은

비행선을 발견하고

총알 세례를 퍼부었는데

여전히 비행선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영국 파일럿들이 총알을 발사해

고폭탄이 터져도,
여전히 산소가 들어가기는

부족한 크기의 구멍만 났다.

영국 파일럿들의 총알이

거의 다 떨어지자

영국 공군 파일럿 중 리프 로빈슨이
마지막으로 남은 탄창으로

용감한 공격을 시도하는데,

그것은 바로


비행선의 한 지점에만

사격을 가하는 것이였다.

좀더 고도의 기술과 침착함으로

비행선의 한 지점에만 공격을 가하자,

큰 구멍이 뚤렸고

비행선에 큰 구멍으로

빠르게 산소가 밀려들어와
언제 터질줄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불타는 소이탄이 들어오자

비행선이 큰 폭발을 일으키며 추락한다

영국에 불타는 비행선 덩어리가 떨어지자,
시민들은 환호하며 기념품으로

잔해들을 뜯어서 가져갔고

다음날 신문에 "영국 최대의 공짜 쇼"

라는 제목으로 널리 퍼진다.

또한 비행선 격추의 영웅인 리프 로빈슨은


(사실 이미 폭격기를 동원해

격추한 적이 여러번 있지만
영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조금 과장해서 추켜세웠다.)

이후 영국의 전쟁영웅으로

작위까지 얻게되었다.
반면 독일제국은


이후 비행선 운용에

매우 소극적으로 바뀌어

사실상 비행선은 사장되어진다.

그리고, 이때 만들어진

항공용 소이탄과, 고폭탄은


현재까지도 항공전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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