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한국에 일어난 토막살인 사건

2021. 5. 26. 16:38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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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6월 30일  오전

긴급기자회견을 요청한 경찰서장의 첫마디는 이러했다

"어떻게 이런 끔직한 범죄가 다 있을 수가 있습니까? "  

끔찍하고 엽기적인 살인이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차마 할 수 없는 짓”

이라고 국내언론은 개탄했지만

 

당시 1965년 춘천호반

여인 토막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된 토막살인범죄는

 

 

시간이 흐를수록 수법은 점점 더 잔인해졌고

 

 

이후 ‘카피 캣’(모방범죄자) 들은

범죄의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 있다는

망상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수법은 점점 더 잔인해졌고

 

 

범행의 결정적 증거인

사체를 알아볼 수 없게 훼손하거나

없애는 수법도 갈수록 교묘하고 치밀해졌다.

 

 

75년 6월 서울 명륜동에서 일어난

아내 살인 및 사체 분해사건은 그런 면에서

 

 

'카피 캣' 의 잔인 혐오범죄의 종결편이라 부를만했다.

 

 이팔국  47세 (사형)

 

 

 

다방과 양장점을 운영하는 아내에게

얹혀살면서도 걸핏하면

손찌검을 하고 지내던 그는

 

 

열흘 전 6월 20일

아내와 심하게 다투다

격분해 목을 졸랐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살 바에는 아예 갈라서자”

 다그치는 아내를 패다

손등을 할퀴게 되자 이성을 잃은 것이었다

 

 

여기까지야 어쩌다 있을 수 있는

부부싸움 끝 살인이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

 

 실제 당시 범행현장 목욕탕

 

 

 

새벽 1시쯤 그는 사체를 목욕탕으로 옮겼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짐승보다 더한 일을

그는 무려 5시간 동안 꼼꼼히 치렀다.  

먼저 벗겨낸 피부 껍데기와 머리카락은 태워서 없앴다.

 

시체를 수십조각으로 토막을 내어 하수구에 버렸고

 

미처 양이 많아 처리하지 못한

토막시체는 김치와 함께 김칫독에 묻어버렸다

 

 

 

 

그는 집에서 자던 아이들에게

 

 

 “누가 물으면 엄마는 20일 새벽에 집을 나간 뒤

 

 

일절 소식이 없다고 하라”는 등 입막음도 시켰다.

 

 

오전 중에 집안 소독을 완전히 끝낸 뒤 밤에는

 

 

연탄재에 섞은 뼛가루를 비닐봉지에 담고

시멘트 부대로 싸 집에서 1km 가량 떨어진

 

 

페인트 상회 옆 한 쓰레기하치장에 갖다버렸다.

 

피살된 이숙자씨 

 

정말로 단 한 점 남김없이 사체를 처리했으니

 

 

그는 자신이 완전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여유롭게 산책도 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그러나 완전범죄는 그만의 착각이었다.

 

 

살해, 분해된 부인의 딸은 어머니가

사흘째 운영하던 의상실에 모습을 보이지 않자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수사 중인 경찰에게 딸은

 

 

특히 성격이 포악하고 걸핏하면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하는 아버지가

아무래도 수상하다고 귀띔을 했다.

 

 

그러나 심증만 존재하고 물증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범행 현장인 목욕탕은 정말

먼지 한 점 없을 정도로

깨끗이 닦아 놓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범행장소 및 사체유기장소 지도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는 상태에서

다시 새로운 정황증거가 떠올랐다.

 

 

평소 자주 이혼문제로 싸우던 그가

최근에 느닷없이 혼인신고를 해놓은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갈라서 재산분할을 할 것에 대비해

부인 몰래 혼자 신고를 한 것이었다.

 

 

바로 그 문제 때문에

사건 당일 대판 싸움을 한 것이었다.

 

 

계속 자신에게 불리한 정황증거가 나와도

이필국은 자백을 부인했다

당시 신문기사 발췌 " 세상이 이래서야..."

 

 

 

사건발생 열흘째인 6월 29일

 

 

길고 긴 심문과 함께 딸아이의

“뭔가 태운 냄새와 정육점에서 나는

냄새가 섞여서 났다” 는 증언이 나오자

 

 

이팔국은  

“손을 할퀴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아내 목을 졸랐다” 며

 

 

범행내용을 자백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경찰이 타이프라이터도 없이

펜으로 진술조서를 받던 때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그냥 잔혹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사체 처리 과정을 그가 진술하자

 

 

담당형사는 몸서리치며 펜을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훗날 담당형사는

“그가 진술을 시작하자

갑자기 내 앞에 악마가 도사리고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고 말했다.

 

 

너무나 역겨워 진술을 받는 내내

줄담배를 피워댔고 입술을 깨물어

상처가 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나중에 목욕탕을 거의 전부

뜯어내다시피 하며 수색작전을 벌여 하수구 밑에서

 

 

겨우겨우 작은 뼛조각 1를 찾아냈다......

 

 당시 사건현장에서의  현장검증 

 

 

 

범인이 검거된지 1주일만인

7월 8일 0시부터 현장검증이 시작됬다

 

 

당시는 통행금지가 있었을 때인데도

 

 

주민들 50여명이 몰려 범행 재연을 지켜봤고

 

 

치를 떨며 “저놈 죽여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필국는 이를 앙다문 채

특별한 표정변화도 보이지 않으며

 

 

목을 조르는 순간부터

시체분해까지 과정을 냉정하게 재연했다.

 

 

 

결국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고 집행됐다.

 

 

그러나 그런 죄 갚음으로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 잔인무도한 토막살인사건은

 

 

70년대 중후반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카피캣(모방범죄자)들은

 

 

비슷한 모방범죄들을 만들어냈다 ...

지금도 어디선가 이팔국보다 더 오원춘보다 더

 

완벽한 토막살인을 하기 위한 '카피캣'들이

 

모방범죄를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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