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절 북한의 도발사건을 알아보자

2021. 4. 27. 18:15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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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953 7월 27일 휴전 이후

반 세기 동안 무려 2,953여 회에 이르는

대남도발을 감행해왔다.

 

그 중에서도 크고 작은 도발이 가장 많았던

박정희 시절의 북한 도발에 대해서 알아보자.

 

가짜뉴스라고 떠드는

사람을 방지하기위해서

미리 방지하자면

자료는 통일교육원, 국정원 , 구글 위키 , 서적에서 찾아볼수있는 팩트이다.

박정희 재임기간

(1963~1979)

1968년 1.21 

1.21 사태

(김신조 일당 31명 청와대 습격사건)

북한군 특수부대 정찰국의 124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 습격과 요인 암살 지령을 받아

국군의 복장을 하고 무장을 하고 침투했던 사건이다.

황해도 연산-방책선 통과-노고산-북한산-청운동으로 침투

창의문을 통과하려다 경찰 검문에 걸려서

경찰을 사살 하고 이동하지만

 

신고 받은 국군과 경찰이 출동하여

28명을 사살하고. 2명 도주. 1명 생포.

이 때 생포되었던 인물이 바로 김신조다.

 

생포 된 김신조 이름을 따서

김신조 사건이라고 부른다.

 

김신조는 사상전향을 하여

현재 우리나라에서

개신교 목사로 있고 군대 정신교육,

예능출연 까지 했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로 향토예비군이 창설되고

보복을 위해 684부대(실미도 부대)가 조직 됐었다.

ㄴ영화로도 제작 되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거다


1968년 1.23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천조국 푸에블로 호가 승무원 83명을 태우고

원산 동쪽 40km 지점에서 업무 수행 중

 

북한군 초계정 4척과 미그기 2대의 위협을 받고 나포 된다.

이 때 승무원 1명 사망. 13명 부상.

 

천조국은 영해기선인 12마일을

벗어나서 공해라고 주장하며

 

영해침입도 아니고 첩보 활동도 아니었다고 하며

포로 송환을 요구 하며 항공모함을 띄웠다고 함

 

하지만 북한은 영해 침입과 첩보 활동 인정을 할 경우에만

포로 송환을 해준다고 받아치지.

 

전적으로 천조국의 잘못이라고

덤터기 씌우기 위함이었다.

 

선전용으로 쓰기위해

잘못을 인정하면 풀어준다는 말이야

 

천조국은 당시가 냉전시대였고

포로 송환을 위해

본인들의 영해침범이라고

인정해주면서 문서에 서명을 해버린다.

 

10개월 후 포로송환은 이루어지고

푸에블로 호는 평양 대동강 변에 전시되어

대단한 자랑거리마냥

선전용으로 쓰이고 있다


1968년 10.30~11.2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총 세 차례에 걸쳐 북한 무장 공비

120명이 울진,삼척에 침투하여

12월 28일 까지 소탕까지

2개월 동안 게릴라전을 벌인 사건이다.

 

침투로는 아래 그림판 을 보면 알수있다

 

1차: 나곡리-흰병산-태백산-여월 일대 30명

2차: 나곡리-매봉산-청옥산-대관령 일대 30명

3차: 월천리-중봉산-오대산-계방산 일대 60명

 

무장공비들은 울진 북면 산간마을 고수동에 나타나

주민들을 강제 소집하고 위조 지폐를 찔러주면서

북한을 찬양하고 사상 교육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에 반항하는 주민은 잔인하게 학살 했다고 한다.

죽음을 무릅쓴 주민들이 릴레이식으로 신고하여

군경과 예비군이 출동을 했다.

 

 

 

이에 무장공비들은 북상하여 도망가며 

이승복 어린이 일가를 피살을 하는 등

민간인 피해가 굉장히 컸었다.

 

군 11개 부대, 경찰 및 예비군 47,000여명이 투입되었고

무장공비 120명 중 107명 사살, 4명

생포, 3명 자수, 6명 도주라는 전과를 얻지만

국군 전사 34명 부상 50명 민간인 피살

31명의 피해를 봤다..ㄷㄷ


1969년 4.15

EC-121호 격추사건

천조국의 조기경보기(정찰기)

EC-121 워닝스타 한 대가

북한군의 미그21의 공격을 받아

해상으로 추락하여 승무원 31명

전원 사망한 사건이다.

 

EC-121호의 임무는 소련과 북한 사이에서

첩보 활동을 하는 것이었고

2년 동안 같은 임무를 하며

북한의 영공을 침범한 적은 없었다.

 

그러던 4월 15일 13시.

미군 레이더 망에 인민군 미그기 2대가

출격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EC-121호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작전을 중단하고 철수하기로 했는데

미그기를 탐지하고 2분 뒤

EC-121호는 레이더에서 사라진다.

 

수색활동을 위해 미 공군과 해군의 항공기가 투입되고

구축함이 출항하여 다음날 기체의 잔해를 발견 한다.

 

시신 2구를 회수하지만 나머지 29명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고한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천조국 행정부가 전술핵을 사용하여 보복공격을

검토했던 것으로 기밀해제 된

문서를 통해 알려지게 된다...ㄷㄷ

 

전술핵이 뭐지? 핵폭탄인가?

전술핵 소개 전술핵과 전략핵의 차이는 위력과 목적에 따른 차이로 전략핵은 적국의 국가기반을 파괴할 목적이라 위력이 어마어마하게 강한 편이며 전술핵은 전투에 쓰기 위한 목적이라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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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12.11

KAL기 납북사건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

총 51을 태우고 강릉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YS-11기가 이륙 14분 만에

대관령 상공에서 납치됐다

 

북한 원산시 선덕비행장에

강제착륙한 사건이다.

 

이 때 범인은 승객으로 위장하고 있던

북한 간첩 조창희로 밝혀졌다.

 

정부는 이래저래 포로 송환 협상을

성사시키려 하지만 북한은 응하지 않았다.

 

한국 각지에서 규탄 시위가 열리고

12개국 주요 항공사에서

이 사건을 규탄하기도 했다.

사건 2개월 후 태도를 바꾼 북한이

포로 전원 송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말을 바꿔 승무원 4명과 승객 8명은

북한에 남을 것이라며 송환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납치 66일 만에 승객 39명은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지만

간첩 조창희를 포함한 12명의 송환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 이후

'탑승객에 대한 검문검색 강화',

'비행장 직원에게 사법권 부여',

'민간기 승무원들에게 무기 휴대 허용',

'승객의 익명 및 타인 명의의 사용 금지' 등의

한층 강화된 항공기 보안 대책을 수립 한다.


1970년 6.22

국립묘지 현충문 폭탄테러

70년 6월 22일. 6.25전쟁 20주년 행사를 앞두고

북한 간첩 2명이 박정희 및 정부 요인 암살 목적으로

국립묘지 현충문은 폭탄을 설치했던 사건이다.

 

폭탄 설치 중 조작 실수로 인해 폭파해 버린다...

당시 폭탄은 살상 반경이 30m에 달했다고 한다.

2명 중에 한명이 폭사하고

한명은 계양산 방향으로 도망.

군경과 예비군이 출동하고

경기도 일대에서 수색작전을 펼쳐.

그러던 중 김포에서

무장공비를 봤다는 신고가 들어오고

김포 서쪽지역에서

공수특전단원들의 손에 사살 된다.


1974년 8.15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문세광 저격 사건, 8.15 저격 사건)

서울 장충동 국립중앙극장 광복절 기념식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은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이

박정희가 경축사를 읽을 때 저격하려고 한다.

 

갑자기 총성이 울리자 박정희는

연설대 뒤에 몸을 숨기지만

 

여러 총탄 중 한발이

단상 옆 육영수 여사에게 명중 한다.

 

(표적이 없어지자 고의로 노렸다는 얘기도 있다)

서울대 병원으로 후송되어

5시간 동안 수술을 받지만

향년 50세 나이로 끝내 돌아가시지..

문세광과 경호관들의 총격전에

당시 자리에 참석한 여고생 장봉화 양이 피격당해

그 자리에서 숨지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문세광은 현장에서 체포 되었고

그 해 12월 20일에 사형 당했다.

 

문세광이 체포되고 육영수 여사가 후송될 때

박정희가 연설대에 다시 올라

경축사를 마저 했다는 일화는 굉장히 유명하다.

문세광이 몸 담그고 있던 조총련은

좌익 재일교포 단체로서

북한에 매우 우호적인 단체다.

 

북한 산하의 거대한 단체 정도로 보면 된다.

당시 문세광의 권총과 위조 여권 발급 등

공범 중 일본인 까지 끼어 있다는 사실에

한일 관계가 불편해지지만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친서를 휴대한 특사를 파견하며 점차 다시 개선 된다.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일본에 숙이고 들어가야 되는 상황에서

이 사건으로 인하여 역전되기도 한다.


1976년 8.18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공동경비구역 연합군 관할선 안에

높이 15m의 미루나무가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미루나무 때문에

북한군 초소가 제대로 관측이 안 됐다.

 

그래서 대한민국 노동자 5명이

미루나무 전지작업을 하고

미군 경비중대장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소대장 ‘마크 배럿’중위를

포함한 총 6명과

국군 장교 한명을 포함한 5명.

총 11명은 이 노동자들의 작업을

감독하며 경비 중이었다.

 

이때 북한군 박철 소위가

부사관과 병사 15명을

데리고 나타나서 작업 중지를 요구 한다.

 

미군 보니파스 대위가 연합군

관할선이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여

양측 간에 말다툼이 일어나지만

보니파스 대위는 계속해서

작업 지시를 하지.

 

이에 박철은 병력 지원을 요청하고

북한군 20여명이 인근 초소에서

트럭을 타고 도착했다.

 

박철이 다시 한번 작업을

중지하라고 요구 하지만

보니파스 대위가 그쪽 권한이 아니라며

또 다시 거부하자

갑자기 박철은 공격 명령을 내린다..ㄷㄷ

북한군은 트럭에 실어

가지고 온 곡괭이와 삽을 챙기고

한국인 노동자가 쓰고 있던 도끼를 빼앗더니

연합군 11명을 공격 했다.

 

이에 보니파스와 대위와

배럿 중위가 이마에 중상을 입고 피살

다른 인원들은 중경상을 입으며

연합군 차량이 파손 된다.

이 소식을 접한 천조국은

항공모함 미드웨이호와 호위함 5척과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F-111 20대

B-52 폭격기 3대 F-4전투기 24대를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생각으로

한반도에 배치시키고

전투준비태세인 데프콘 3단계가 발령 된다.

 

그리고 미루나무와 공동경비구역의

불법 장애물을 제거하는

‘폴 버니언’ 작전을 실행 한다.

 

국군은 박정희의 독단적 지시로 특전사 64인이

공동경비구역 내의 북한군 초소들을 파괴 하지만

더 이상의 확전은 일어나지 않았고

 

북한 김일성이 유감성명을 전달하며

사건은 일단락 된다.

 

이 사건 이후 판문점은 공동경비가 아니라

분할 경비로 바뀌었다.

 

이 시대에 도발 빈도수는 정말 많았고

큼지막한 사건 수도 굉장히 많았다.

 

생생하게 들려주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1부)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미군 장교 두명이 북한군에게 살해 당했다 도끼로 살해당한 아서 보니파스 대위(Arthur George Bonifas 1943년 4월 22일생)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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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을 자세히 알고싶다면

이 링크를 타고 들어가도 좋다.


어선들의 어로보호작업 중이던 당포함 침몰사건(67.1.19)

연평도 부근에서의 해군 방송선 피랍사건 (70.6.5)

대한항공 여객기 납치 미수사건 (71.1.23)

홍어잡이 배 오대양 61,62호 납북 사건 (72.12.28) 

 의도적으로 서해 5도를 43회 침범한 서해사태 (73년)

그리고 사상자를 낸

GP (DMZ내) 와 GOP 도발도 굉장히 많았었으며

북한의 도발은 전방에만 국한 되는게 아니라

해안가를 기점으로 전후방 모두에서 나타 났었다.

 

박정희때 북한 도발이 많이 일어났으니

문재인처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다가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을까봐

 

친북 정책을 펼쳤던 김대중과 노무현때

북한 도발글을 준비해왔다.

 

김대중 노무현 시절 북한의 도발사건을 알아보자

북한은 1953 7월 27일 휴전 이후 반 세기 동안 무려 2,953여 회에 이르는 대남도발을 감행해왔다. 가짜뉴스라고 떠드는 사람을 방지하기위해서 미리 방지하자면 자료는 통일 교육원, 국정원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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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핵이 뭐지? 핵폭탄인가?

전술핵 소개 전술핵과 전략핵의 차이는 위력과 목적에 따른 차이로 전략핵은 적국의 국가기반을 파괴할 목적이라 위력이 어마어마하게 강한 편이며 전술핵은 전투에 쓰기 위한 목적이라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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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게 들려주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1부)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미군 장교 두명이 북한군에게 살해 당했다 도끼로 살해당한 아서 보니파스 대위(Arthur George Bonifas 1943년 4월 22일생)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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