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노무현 시절 북한의 도발사건을 알아보자
2021. 4. 27. 19:20ㆍ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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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953 7월 27일 휴전 이후
반 세기 동안 무려 2,953여 회에 이르는
대남도발을 감행해왔다.
가짜뉴스라고 떠드는 사람을 방지하기위해서
미리 방지하자면 자료는
통일 교육원, 국정원 , 구글 위키(이미지), 서적에서 찾아볼수 있는 팩트이다
김대중
(1998~2003)
여성가족부를 만들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1998.06.22
동해안 잠수정 침투사건
북한 소형잠수정이
속초 근해로 침투하는 중
스크류에 꽁치잡이 어망이 걸려서
9명 전원 자살한 사건이다.
잠수함 선체를 예인하여 조사한 결과
내부에서 시체 9구와 다수의 무기를 노획하고
전투원 명단을 발견하여 9명이 전부임을
최종 확인하고 사건이 종결 된다.
1998.12.17
여수 잠수정 격침 사건
전남 여수 돌산읍 해안으로
침투 중이던 북한 반잠수정을
당시 해안경비초소에서
근무 중이던 이병이 TOD로 관측 한다.
해군이 출동하여 초계함과
고속정 4대가 포위를 하고
정선 명령을 내리며 위협사격을 했으나,
북한 반잠수정이 응사를 하며
도주하여 이를 추격 한다.
결국 거제도 남서쪽 100km 지점에서
이를 격침 한다.
(최종 사체 6구 인양)
1999.06.15
제 1 연평해전
1999년 6월 15일
북한 해군 경비정 4척과 어선 20척이
북방한계선 남쪽 2km 해역까지 내려 왔다.
이에 국군은 참수리급 고속정과
초계함 10여 척을 동원하여
밀어내기 작전
(함정에 직접 부딪혀 밀어내는 작전)을
펼치며 2차에 걸친 경고 방송을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북한 함정의 기습 공격이었다.
이에 우리 해군은 즉각적으로
40mm. 76mm 기관포로 응사하며
교전 14분 만에 승리를 거뒀다.
아군 피해: 함정 2척 파손 , 인명 7명 부상
북괴군 피해: 함정 1척 침몰, 1척 반파 , 3척 파손
인명 50여명 사상
제 1연평해전 이 후 김대중은
선제공격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2002.06.29
제 2 연평해전
한일월드컵 막바지에 무력도발로 충돌이 일어나.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 2대를 막기 위해
차단기동 (상대 함정의 경로를 수직으로 막는) 을 하던
참수리급 고속정 357가
지근거리에서 기습 공격을 받아.
당시 정장 윤영하 대위가 중상을 입어 전사하고
부정장 이희완 중위가 허벅지에
총상을 입은 채 지휘를 했다.
당시 복잡했던 해군의 소극적 교전수칙과
김대중의 선제공격은 하지말라는
교전수칙 까지 더해져
초기에 많은 피해를 입은 채
교전이 발발 했다.
인근 해역에 있던 고속정 3대가
추가로 공격을 개시하고
초계함 2척이 잇따라 화력 지원을 하자
북한군은 등산곶 684호가 반파되며 퇴각을 했다.
선제 공격을 받았었던 참수리 357호는
예인 과정 중에 결국 침몰 해 버린다.
국군 피해: 참수리 357호 침몰, 6명 전사, 18명 부상
북괴군 피해: 등산곶 684호 반파, 3~13명 사망, 25명 부상
이 후 참수리호 정장이었던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의
이름을 붙인 ‘윤영하 함’ 이 건조 되고
5단계였던 교전수칙이 3단계로 단순화 된다.
월드컵 결승전 일왕과 함께
당시 김대중은 무엇을 하였는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4시간 35분만에 여는 등의 늦장 대응.
-우발적 충돌로 결론을 내리고 북한에서 같은 내용의 통지문이 오자 그대로 수용.
-사건 다음날 예정되어 있던 금강산 관광선 출항.
-다음날 일본으로 출국하여 월드컵 결승전 경기 관람.
-사건 이틀 후 전사자 합동영결식에도 불참.
(당시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 합찹의장 또한 불참. 반면 전두환은 참석)
(불법 송금액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은 6월 13일.
2000년 노벨 평화상 수상은 12월 10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진
불법송금 4억 5천만 달러.
15억 달러라는 전 국정원 직원의 증언도 있었는데
이것을 지금 환율로 계산하면
4810억~ 1조 6,035억 원
이런 ㅅㅂ새끼
돈으로 산 노벨상 기념관도 있다?
그곳은 전라도(지역비하 아님 팩트임)
아무튼 흥분을 가라 앉히고
노무현 시절 도발로 넘어가 보면
노무현
(2003~2008)
핵실험 외에 테러리즘은 없었다.
평화를 돈으로! 핵으로!
2006년 10월 9일
올 것이 왔다.
1차 핵실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위치한 핵실험장에서
참여정부의 대북화해협력 정책 속에 핵실험이 딱!
러시아에서는 15kt급 핵실험이라고 밝혔지만
서방과 대한민국에서는 1kt 급이라고 평가했다.
국제 사회에서는 강력하게 규탄하고
대북제재와 제재위원회 구성을 결정한
안보리 결의제 1719호를 만장 일치로 채택 한다.
이에 대한 노무현 반응은?
남는 장사!!
제재 따윈 없다.
오직 평화!!
아베 뿐만이 아니라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도
규탄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이 것 또한 거부.
핵실험 이후에 NLL은 보너스다
글을 제대로 읽은 자둥이라면
NLL사건들을 위에서 분명 봤을거다.
조국을 위해 희생된 모든 이들을
모욕한거다 이ㅅㄲ는.
북한 대변인 같다.
그 외에도 많은 어록들이 있지만
아는 사람은 잘 아니까
여기까지만 하고
노무현때는 아예 북의 도발인지
대국민 노무현 도발인지 구분이 안가네
우리의 주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고
바른 대적관과 안보의식을 확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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