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노태우 시절 북한의 도발에 대해
2021. 4. 27. 19:38ㆍ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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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953 7월 27일 휴전 이후
반 세기 동안 무려 2,953여 회에 이르는
대남도발을 감행해왔다.
(사실 노태우 정부 때는 별거 없다..)
가짜뉴스라고 떠드는 사람을 방지하기위해서
미리 방지하자면
자료는 통일교육원, 국정원 , 구글 위키 , 서적에서 찾아볼수있는 팩트이다.
전두환 정부 1980-1988
1983.10.09
미얀마(버마)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
(당시 미얀마의 국명이 버마였다)
전두환의 동남아 5개국
순방 중에 생긴 일이다.
첫 순방길 방문지였고
아웅산 묘소에서 참배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테러범들은 방문 일정을 파악하고
차량에서 내릴 때 폭사 시키려고
묘소 건물 천정에 폭발물을 설치해 두었다.
전두환 도착 직전에
애국가를 틀고 행사 예행 연습을 하던 중
수행원 탑승 차량이 묘역에 도착하자
테러범들은 전두환이 도착한 것으로 오인하여
원격조종 폭탄을 폭파 시킨다.
사실 전두환은 당시 교통 정체로 인해
예정 시간보다 30분이 지체되어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고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현장에 있던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등
한국인 17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 당했다.
버마 정부의 수사로 김정일의 지령을 받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의
진모 소좌, 강민철 대위, 신기철 대위의 소행임을 밝히고
묘소 인근에서 신기철을 사살하고 두 사람을 체포 해.
미얀마는 당시 사회주의 국가로 북한과 가까웠으나
자국 독립 영웅들이 안장 되어 있는 묘역에서
테러를 일으켰다는 것에 분노하여
북한과의 국교를 단절하고
12월9일에 테러범 사형 선고를 했다.
전두환은 이 사건으로 인해
순방길을 모두 취소하고 귀국했다.
미국 일본을 비롯해
세계 69개국이 대북 규탄성명을 발표하고
후에 현장에서 돌아가신
서석준 부총리 등 17명에 대한
합동 국민장이 거행 되었다.
전두환은 부들부들 하지만
한국에서 개최 될 국제경기 때문에
군사적 보복은 없었다고 한다.
1983.12.03
부산 다대포 무장간첩 침투
사전에 미리 침투 계획을 알고 있던 정보기관과
특수부대의 연합 작전으로 생포.
(사건 당시에는 초병에 의한 발견에서 시작 된거라 밝혀졌었지만
후일 정보기관과 특수부대가 개입 했다고 밝혀짐.)
1984.09.24
북한 무장간첩 1명
대구에서 민간인 무차별 살상
민간인 2명 사망, 1명 부상
1986.09.14
김포공항 청사 폭탄테러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개막 1주일을 앞두고
김포 국제공항에서 아시안 게임 방해를 목적으로
일어난 폭탄 테러 사건이다.
폭탄은 국제선 청사 쓰레기통에서 폭발하였고
일가족 4명과 공항관리공단 직원 1명이 숨지고
3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수류탄 7개에 맞먹는 폭발이었는데
사망자가 5명에 그친 이유가
당시 공항관리공단 직원 유주환 씨가
폭파지점과 가까운 곳에서
보수공사 중이었기 때문에
폭발물 파편 대부분을 맞아서 그렇다고 한다.
당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해외 선수단과 IOC위원들이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국가 이미지 관리를 위해
현장 원점 보존보다는 빠르게 현장 정리를 하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되고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23년 후인 2009년에 테러범의 실체가 드러나.
범인은 오사마 빈 라덴 이전에 악명이 높던
이슬람권의 테러리스트 ‘아부 니달’ 이다.
구 동독 정보기관의 보고서 중에
아부 니달을 심문한 기록이 있는데
북한의 청부를 받고
김포공항을 테러했다고 자백했다고 한다.
김일성과 아부 니달은 빨치산에 대해
공통된 의견을 가지고 있어 둘은 점차 가까워졌다.
그러다 500만 달러를 대가로 테러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번에도 전두환이 분노했지만
아시안 게임 때문에 그냥 넘어갔다
1987.01.15
제27 동진호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중 납북
북한은 김만철 일가 귀순
(첫 가족 단위의 탈북 사례)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선원 12명을 억류 중
1987.11.29
KAL 858기 폭파 테러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KAL 858기가
미얀마 해역 상공에서 북한공작원이 설치한
시한폭탄 의해 공중 폭파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한국인 93명 외국인 2명 승무원 20명
총 115명 전원 사망했다.
올림픽 방해와 한국 내에 정부 불신 조장이 목적이었다.
폭파범은 두명으로 바레인 공항에서 조사를 받던
김승일은 독약을 먹고 자살하고
김현희는 한국으로 송환 된다.
처음에는 기체 잔해와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고
국정원이 빠른 속도로 수사를 종결하여
음모론이 나 돌고 사건에 대한 의혹 제기가 있었다.
2년 반 후에 잔해가 발견 되었는데
그럼에도 대선을 노린 여당의 음모라며
음모론은 계속해서 제기 됐다.
북한은 본인들 소행이 아니라며
지금까지도 부인하고 있지만
2012년에 공개 된 천조국의 KAL기 기밀문서가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문서 내용 일부-
(해외방송청취기관(FBIS)에서 분석한
김현희의 말이 북한 말로 입증.
또 미국이 통제하는 상황에서 김현희에게
(북한 고정간첩) 26명의 사진을 제시했고,
이때 KAL기 폭파 직전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접촉한 2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1인 등 3명의 사진을 정확히 골라냈다)
이번에도 역시나 전두환은 분노했지만
88올림픽 때문에 보복을 자제한다.
이처럼 국제 경기 전에는 꼭 도발 사건이 있었다.
이 후 2002년 월드컵 때도 연평해전이 일어났었지.
노태우 정부 1988-1993
4건의 어선 피랍(전원 귀환)과
무장 침투 사례
잘 밝혀지지 않은 DMZ 내
자잘한 도발 사례가 있지만
다른 사건에 비해 규모가 작아서
다룰 만한 정보는 찾을 수가 없었다.
확실히 이 시기에는 한국에서 개최하는
국제경기 방해를 목적으로 한 테러 외에
규모가 큰 도발 사건은 없었지만
자잘한 도발에도 분명 희생된 민간인은 많았었다.
북괴 도발의 희생된 모든 분들과
천안함 46용사
그리고 한주호 준위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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