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독일의 전투기 전쟁을 알아보자 2편

2020. 10. 21. 17:33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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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중부와 북부에 주요 산업시설과
군 시설들을 쓸어버리고자

 

무려 2000여대에 이르는 항공기를 동원한
독일공군의 초 대규모 공습작전은

 

시작도 하기 전에 영국 정보부의 무선감청을
통해 벌써 발각되고 말았다고 해.

 


 

영국공군은 실제로 독일공군이 예상했던대로
중부와 북부지역의 전투기들을 남부로
배치 시키기는 했었으나

 

무선감청 이후 비밀리에 [제14 전투 비행단] 을

중부지역으로  재배치시켜 공습에 철저한

대비를 할 수 있게 되었지.

 

한편,

 

 


 

노르웨이에 주둔 중이며 공습작전에 핵심주공
역할을 맡게될 [제5항공단] 에서는

 

폭격기들을 호위할 전투기들의 항속거리가
부족하여 작전에서 제외시키는 등의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자

 

항공단 지휘부가 괴링에게 공습계획을 전면
재검토 해줄 것을 요구했었는데

 


 

괴링과 독일공군 사령부도 [제5항공단] 이 처한
문제점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상대적으로 영국 남부에 밀집 배치된 영국군
전투기들이 중부와 북부로 다시 올라와
폭격기들을 상대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니 재빨리 폭격 후
노르웨이로 돌아가면 된다고 답변만
해줄 뿐이었어.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누구도 공습계획이

영국에게 노출됐다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야.

 

 

1940년 8월 15일.

 


 

며칠간 지속된 악천후 이후 기상상황이 잠시
좋아진 틈을 타 독일공군은 예정보다
일찍 공습작전을 개시했어.

 

유럽에 있는 [제2항공단], [제3항공단] 에 소속된
1500여대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대거
영국 남부를 향해 출격했으며

 


 

노르웨이에 배치된 [제5항공단] 은 텅텅 빈
영국의 중부와 북부를 초토화 시켜줄
500대의 폭격기도 출격했지.

 


 

그런데 [제5항공단] 이 영국해안에 다다르자마자
마주친 것은 다름아닌 영국공군 소속의
[제14 전투 비행단] 이었고

 

호위 전투기도 없이 출격했던 [제5항공단] 은
그야말로 영국공군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아야 했어.

 


 

그로 인해 [제5항공단] 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상실한 후 뿔뿔히 흩어져 노르웨이로
패퇴해버렸으며

 

[제5항공단] 이 공습할 예정이었던 목표들도
대부분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해.

 

하지만

 

 


 

1500대에 달하는 독일공군이 습격한
영국 남동부에서는

 

영국공군과 독일공군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지.

 


 

영국군 방공부대는 필사적인 레이더 관제를 통해
남부지역에 공습을 가하려는 폭격기들을
저지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으나

 

숫적으로 꽤나 밀리고 있었던 터라 영국공군이
일일이 전부 저지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남부의 주요 시설이 독일공군에게
공습 당하는걸 허용해야 했어.

 


 

어찌됐든 영국공군의 피를 토해내는 분전으로

독일공군이 야심차게 준비한 공습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면서 독일공군은

모두 후퇴하고 말았으나

 


 

이 때의 격렬한 공중전으로 인해 영국공군도
400명 가량의 파일럿들이 전사하거나
부상으로 전선을 이탈하는 등의

 

무척이나 뼈아픈 손실을 겪어야 했지.

 


 

상처뿐인 승리를 기록한 영국공군은 이때부터
내부적인 상황이 점점 악화되어 갔는데

 

영국에서 필사적으로 공장들을 돌려가며
전투기들을 뽑아내고는 있었던지라

 

영국공군이 보유한 전투기들은 대략 700대에
육박할 정도로 보충되고 있었지만

 


 

이 전투기들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숙련된 파일럿들이 지속된 전투로

 

점점 소모되어 현재에 이르러서는 거의
씨가 마른 상태였다고 해.

 

그래서 영국공군은 비행기는 남아도는데 그걸

조종할 파일럿이 부족한 상황까지 도달

하고야 말았지.



 

1940년 8월 24일.

 


 

독일군 수뇌부는 번번히 작전에 훼방을 놓는
영국군의 레이더와 무선감청에 대응하기
위해 전술을 변경하고자 했어.

 

그 결과,

 


 

독일공군은 영국해협에 다수의 항공기들을 풀어
이리저리 날아다니게 만드는 전법으로

 

영국군 레이더에 혼란을 줘 공격부대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끔 만들었으며

 


 

독일은 막대한 뇌물을 동원해 영국에 각종
첩보 루트를 개척하는데 성공하여

 

영국군 내부의 상황을 예전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지.

 


 

독일군이 전술을 변경한 이후부터 영국공군의
레이더망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

 

본토를 침범중인 독일공군 폭격기들을 요격하기
위해 출격한 영국공군이 되려 역습을 당해
사냥당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영국공군의 대응이 번번히 격퇴당하자 여유가
생긴 독일 폭격기들은 제대로된 공습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독일공군의 공습작전 성공률은 순식간에
바닥에서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어.

 


 

그리고 독일공군이 야간에도 공습을 개시하자
야간에 전투를 해본 경험이 전무했었던
영국군은 형편없는 대응을 했으며

 

야간전에 한해서 영국군이 자랑하던 대공망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말았지.

 


 

하지만 야간작전에 경험이 거의 없었던 것은
독일공군도 마찬가지 였는데

 

때는 독일공군이 한창 주간 야간 가릴것 없이
영국 본토에 공습을 하고 있을때 벌어진
사건이었어.

 


 

독일공군 제2항공단 소속의 폭격기 두대가
야간공습 임무를 수행하기위해

 

영국 본토에 진입했다가 그만 길을 잃게 되었고
한동안 영국 상공을 이리저리 헤매던 중

 


 

갑작스럽게 엄청난 규모의 대공 포화를 받게 되자

깜짝놀란 폭격기들은 신속하게 현장을

벗어나기 위해

 

남아있는 폭탄을 모두 투하한 후 황급히

기지로 돌아갔다고 해.

 


 

그런데 이 폭격기들이 길을 잃고 진입했던
곳이 알고보니 런던 상공이었으며

 

그냥 버리듯이 투하한 폭탄들이 런던 시가지
곳곳에 떨어져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벌어진거야.

 


 

영국군과 독일군 양측 모두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민간인 거주지역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룰만큼은 지켜오고 있던
와중에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 은 크게 분노하여
영국공군 사령관을 즉시 호출했어.

 

처칠은 즉시 폭격기들을 동원하여 베를린
폭격을 감행하도록 닥달했으며

 


 

별다른 전투 없이 유럽에 선전물이나 살포하는
임무나 수행해 왔었던 영국공군 소속의
[왕립 폭격기 사령부] 는 뜬금없이

 

베를린 폭격이라는 엄청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난리가 난 상태였지.
 

 

 

1940년 8월 25일.

 



영국군 최초로 베를린을 폭격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된 [AW 휘틀리 폭격기] 는

 

폭장량도 적고 속도도 느린 구식 폭격기였으나
지금까지 독일 전역에 삐라를 살포하면서

 


 

쌓아온 다양한 비행 노하우와 경험이 큰 도움이 되어

야간에 곧장 베를린으로 출격하여 폭탄들을

떨군 후 잽싸게 복귀하였다고 해.

 

비록 베를린에는 경미한 피해만 줬을 뿐이지만
베를린에 영국군의 폭탄이 떨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독일에게 충격과
공포를 심어주게 되었을 거야.

 


 

한편 베를린 폭격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영국공군은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구식 폭격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며칠 동안 수차례 더

베를린 폭격을 감행하였으며

 

총통관저에 있는 히틀러와 독일 수뇌부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겨주기 시작하자

 


 

베를린의 방공망은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호언장담하던 괴링은

 

체면이 단단히 구겨진 채 히틀러에게 불려가
온갖 쓴소리들을 들어야 했어.
 

 

 

1940년 9월 4일.

 


 

비록 영국공군 폭격기들이 베를린 폭격을
몇번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것 만으로는 서서히 기울어져 가는 전황을
한번에 뒤집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최전선인 영국 남동부 지역에 영국공군은
독일공군에게 거의 괴멸적인 피해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고 해.

 


 

지금까지 영국 본토 방어에 핵심전력으로 활약해
왔었던 영국공군 소속 [제11전투비행단] 이

 

끝끝내 계속되는 크고 작은 전투에 전력의 

대부분이 소모되어 괴멸수준으로 몰려

전투불가 판정을 받았고

 


 

독일공군의 야간공습으로 인해 공업시설들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아 전투기 생산에
큰 차질을 빚고 있었어.

 

이리하여 지속적으로 손실을 입는 전투기를
보충하는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지.

 


 

특히나 전투기를 모는데 필요한 파일럿들이
3/10 수준으로 대폭 감소된 상황이라

 

아직 비행조차 해보지 못한 훈련병들 수백명을
간단한 비행 훈련을 시켜준 뒤 최전선에
곧바로 배치시키거나

 


 

유럽에서 망명해온 난민들 중에서도 항공기
조종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닥치는대로
징집하여 전투기에 태워야 했어.

 

당연히 이렇게 전투기를 몰게된 파일럿들은
생존확률이 극히 낮아 빠르게 소모되어
버리고 말았다고 해.
 

 

 

1940년 9월 5일.

 


 

비록 독일공군이 영국공군을 몰아붙임으로써
베를린 폭격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히틀러는 지난 며칠동안 베를린이 무기력하게
폭격 당해야 했다는 사실에 여전히 크게
분노해 있는 중이었어.

 


 

히틀러는 이 수모를 영국에게 되돌려 주기위해
런던을 잿더미로 만들 생각에 독일 공군의
사령관들을 호출하기 시작했지.

 

히틀러는 공군 사령관들과 함께 런던공습에
대한 조언과 의견을 주고받았고

 

그 결과, 사령관들이 서로 상반된 의견을

주장하여 히틀러를 고민에 빠트렸어.

 


 

먼저, 개전 초기부터 런던 폭격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던 [제2항공단] 사령관

 

[알베르트 케셀링 원수] 는 히틀러의 의견에
매우 기뻐하며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제3항공단] 사령관 [휴고 슈페를 장군] 은
독일공군의 대대적인 공세로 인해

 

영국공군의 전력이 확연히 줄어들기는 했으나
영국이 필사적으로 전투기 보충에 들어가

 

적어도 700대 이상의 항공기 전력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주장했으며

 


 

그동안 영국 전투기들을 상대하고 폭격기들을
호위해 왔던 독일공군의 [Bf-109] 가

 

항속거리가 짧아 유럽에서 런던까지 폭격기를
호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작전 자체가
불안정하다고 주장하면서

 


 

독일공군 사령관들의 의견 차이가 발생하며
런던공습은 흐지부지 되는 듯 했으나

 

영국에게 꽤 큰 심리적 압박을 안겨줄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에 설득된 히틀러는

 

9월 7일에 런던을 공습하기로 결정했어.
 

 

 

 

 

 

 

 

 

 

            " 빌어먹을 승리의 여신이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려 "

                      한다면 그녀의 허리를 잡아 비틀어서라도

                              우리에게 미소짓게 만들어주지

 

 

 

 

 

               " 그러니 함께 죽고 싶다면 어디 한번 개떼처럼 " 

                                    우르르 몰려 와보라고 해


 

 

 

 

                        " 나치새끼들을 하나라도 더 지옥의 "

                                      길동무로 삼아줄테니

           

 

                          - 영국공군 총사령관 Hugh Dowding -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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