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독일의 전투기 전쟁을 알아보자 3편
2020. 10. 21. 17:40ㆍ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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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9월 7일.
영국은 뛰어난 암호해독기가 있었음에도
독일공군의 런던공습 계획을 사전에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어.
그래서 영국군은 어떠한 대비도 없이 평소처럼
독일공군의 주요 공격루트였던 남동부에
다수의 병력을 배치시켜 뒀었지.
그런데 독일공군은 항속거리 문제로 폭격기들을
호위 해주던 전투기들을 작전에서 제외
시키는 모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폭격기들이 최대한 남서쪽으로 크게 우회하여
런던을 기습적으로 공습하도록 하였고
그 결과,
독일 폭격기들은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은 채
런던 상공에 도착하여 예정대로 공습을
개시하게 되면서
런던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어가고 있었지.
그런데 하필 지금까지 런던의 방어를 담당해 왔던
[제11전투비행단] 이 사실상 괴멸 당하여
전투불능 상태였던지라
런던을 공습하던 독일 폭격기들은 한동안 어떤
공격도 받지 않은 채 느긋하게 폭탄들을
투하할 수 있었다고 해.
하지만 다행히도 [제12 전투비행단] 에서 보낸
전투기들이 서둘러 런던에 도착하여
40여대의 독일 폭격기들을 격추시키면서
런던공습을 중단시킬 수 있었지.
1940년 9월 8일.
전날 독일공군의 공습을 받았던 런던에 또 다시
독일공군이 출현하였는데
이들은 런던공습으로 남동부의 배치된 영국군들이
큰 혼란에 빠져 있던 틈을 타서 당당하게
영국해협을 건너왔었고
이번에는 영국 공군도 대응을 하기 위해서
[제12 전투비행단] 을 출격 시켰으나
이번 2차 공습에 독일공군은 호위전투기들까지
대동하여 런던까지 왔기 때문에
[제12 전투비행단] 은 독일공군 전투기들을
상대하는 것 만으로 진땀을 빼야 했어.
그리고 이번에도 똑같이 런던 방어에 실패하여
독일 폭격기들에게 런던이 공습 당하는걸
허용해야만 했지.
1940년 9월 9일.
사실상 이름만 간신히 유지중이던 영국공군
[제11 전투비행단] 은 독일이 런던마저
공습하는 지경에까지 다다르자
아직 훈련도 마치지 못한 햇병아리 훈련병들을
전투기에 태워서 전력을 보충시켰고
3차 런던공습을 위해 영국해협을 건너오던
독일공군의 폭격기들을 저지하기위해
출격하게 되었어.
대다수가 훈련병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제11 전투비행단] 은
폭격기들을 호위중이던 독일 전투기들과 맞서
싸우며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끝까지 폭격기들을 물고 늘어져 그들에게도
적지 않은 출혈을 강요시킬수 있었지.
하지만 호위 전투기들이 영국공군을
붙잡아 두고 있을 동안에
적지 않은 독일 폭격기들과 호위 전투기들이
방어망을 뚫고 영국 본토로 진입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공습목표인 런던을 코앞에 두고 있었으나
그들을 기다렸던 것은 바로 [제12 전투비행단]
소속의 전투기 200여대 였다고 해.
결코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서 런던까지 왔었던
독일공군은 이들을 막아낼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어.
심지어 폭격기들을 호위해야할 전투기들은
이제 연료가 얼마 남아있지 않아서
영국 본토에 머무를수 있는 비행시간이
채 10분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기 파일럿들은 끝까지 이곳에 남아 폭격기들을
호위하다가 연료가 떨어져 추락하거나
아니면 폭격기를 호위 임무를 포기하고 지금
당장 기지로 복귀하거나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지.
남은 연료 잔여량으로 눈앞에 있는 수백대의
적 전투기들을 상대 한다는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고
앞서 [제11 전투비행단] 과의 교전으로
남아있는 탄약도 부족한 상태였어.
조금이라도 꾸물거렸다간 기지로 돌아가는
도중에 연료가 바닥나버려 영국해협에
추락할 위험도 상당히 높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독일군 Bf-109 파일럿들은
몹시 힘든 선택을 해야만 했을거야.
결국, 대부분의 호위 전투기들은 호위임무를
포기하고 기지로 복귀하는 선택을 했지만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의 독일 전투기 파일럿들은
끝까지 전장에 남아 적 전투기들을
상대하는 임무를 수행했어.
하지만 이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독일공군은
[제12 전투비행단] 과 정면으로 부딪혀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으며
3차 런던공습은 대실패로 돌아갔다고 해.
1940년 9월 11일.
괴링은 3차 런던공습 작전때 독일공군이 입은
폭격기와 전투기 손실이 상당히 컸는지
런던공습을 급히 중단시켰지만
1940년 9월 14일.
런던공습이 중단된 것을 안 히틀러가 곧 있을
영국 상륙작전을 대비하기 위해
9월 17일까지 확실하게 영국공군을 완전히
괴멸시켜 놓으라는 명령을 하달했으며
런던공습을 재개하라고 지시했지.
히틀러의 명령을 받은 괴링은 영국과의 전쟁이
슬슬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하자
런던공습 대해 고민 했으나
어쩔수 없이 런던공습을 재개시켜야 했어.
1940년 9월 15일.
독일공군은 무려 1100대에 달하는 폭격기와
수백대의 전투기들을 박박 긁어 모아
런던으로 몰려가기 시작했어.
이번에는 레이더를 통해 미리 독일공군의
움직임을 예측한 영국공군도 곧장
요격 전투기들을 보냈는데
그 댓수만 대략 500여대로 영국공군이 보유한
대부분의 항공 전력에 해당되는 숫자였지.
가장 먼저 독일공군과 맞붙게 된 영국공군은
[제11 전투비행단] 으로 불과 몇달 전에
괴멸당한 전적에서부터 대부분의 파일럿들이
신참이라는 꼬리표까지 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력 전투기인 [스핏 파이어] 가 독일공군의
호위 전투기들을 상대하고 있을 때
성능 면에서는 조금 뒤쳐지는 [허리케인] 이
폭격기들을 공격하는 방식의 전술을
구사하여 큰 피해를 입혔어.
천여대가 넘는 항공기들이 영국해협에서 서로
뒤엉켜 치열한 공중전을 펼치고 있는 동안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다수의 독일 폭격기들은
런던을 향해 전속력으로 비행하고 있었지.
그런데 영국공군 소속의 [제12 전투비행단] 과
런던 인근에서 또 다시 마주침으로써
독일 폭격기들은 저번 공습 때처럼 큰 피해를
입은 끝에 간신히 도망갈 수 있었어.
이날의 패전으로 독일공군은 200대가 넘는
폭격기와 전투기들을 잃어야 했고
영국공군은 런던공습을 막아낸 대가로
70대 가량의 전투기들을 잃어야
했다고 해.
1940년 9월 16일.
3차 런던공습과 4차 런던공습에서 연이어
독일공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
패배했다는 보고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던 괴링은 투입 가능한
모든 전투기들을 출격시켜서
다시 부활하려는 조짐을 보이는 영국공군을
초장에 짓밟아 버리려고 했었지만
한 동안 기상상황이 악화되는 바람에 이러한
그의 생각은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영국 본토 상륙작전에 큰 방해거리였던
영국공군을 괴멸시키지 못하자
히틀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영국 상륙작전을
무기한 연기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해.
영국 상륙작전이 사실상 흐지부지 되자
잔뜩 빡이 쳐있었던 히틀러는
괴링에게 독일공군으로 하여금 영국 전역에
지속적으로 공습을 개시해 계속 압박
하라고 지시했지.
1940년 12월 29일.
영국전역에 걸쳐 산발적인 야간공습을
진행해 왔었던 독일 공군은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할 준비를 한답시고
유럽에 배치된 항공기 전력 상당수를
동부로 옮겨버리는 바람에
상당히 약체화 되고 말았다고 해.
이후 서부전선의 독일공군은 그야말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버렸고
이제는 거의 완벽하게 부활하는데 성공한
영국공군이 되려 반격을 시도하여
영국군 폭격기들이 독일의 도시들을 공습하는
어이없는 일들 마저 벌어지고 있었어.
그러자 프랑스에서 여전히 영국을 상대하기위해
남아있었던 독일공군 수뇌부는
이대로 계속 기선을 제압당한다면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판단하였고
1941년 5월 10일.
마지막으로 영국놈들에게 한방 먹여주자는
일념 하나로 독일 공군은
각 비행단에서 동원 가능한 모든 항공기들을
긁어 모음으로써 대략 500대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출격 준비시켰고
당일날 밤,
이들 전부를 모조리 런던 방면으로 출격시켜
런던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려 했어.
처음에는 독일공군의 야간공습에 런던은
큰 피해를 입어가고 있었지만
야간비행에 어느 정도 숙련이 된 영국공군이
이들을 실력으로 압도하며 쳐부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변해갔고
지상에 있던 수많은 대공포대들이 불을 뿜어
독일 폭격기들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지.
런던 상공에서 양측 공군의 격돌로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말았으며
영국공군에게 숫적으로 불리했던 독일공군이
다수의 항공기들을 상실하고 후퇴하게
되면서 전투는 끝이 나게 되었어.
그리고 이 때의 공습을 끝으로 서부유럽의
독일공군은 더 이상 대규모 공습을
진행할 여력을 상실하였고
영국을 점령하겠다는 히틀러의 계획은 모든
관심이 소련으로 돌아가면서 완전히
잊혀지고 말았다고 해.
" 1914년 8월 9일, 나는 프랑스에서 싸웠었다 "
" 볼품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내가 어쩌다 "
전투기에 탑승하게 되었을 땐
" 다들 나를 얼마나 부러워 했었던지 "
" Marne, 수많은 사람들이 지상에서 "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갈 때
" 나는 하늘에서 수많은 실력자들과 "
명예로운 결투를 펼쳐가며
살아남았었다
" 그 때 당시 나에겐, 전장의 하늘이 "
내 모든 것이고 내 전부였다고
생각했었기에
" 고향에 두고 온 사랑했던 여인과 그녀의 "
뱃속에서 자라고 있던 내 아이조차
떠올리려 하지 않았고
" 단 한번도 편지를 써준 적이 없어서 "
아마 내 소식을 알 방법이 전혀
없었을테지
" 그러던 어느날 나는 추락하고 말았단다 "
" 붉은남작, 그 비겁한 프로이센 귀족은 "
내가 하늘에서 죽음을 맞이할
기회조차 주지 않더구나
" 나는 운좋게 살아남았지만 그 때 입은 "
부상으로 나는 두번 다시 비행기를
몰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고
" 그 소식을 군의관에게 들었을 땐 그저 "
서럽게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지
" 그렇게 나는 부상병으로 쓸모없이 밥이나 "
축내며 수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 전쟁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군대는 나를 "
고향으로 쫒아버리고 말더구나
" 몇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갔더니 한 여자가 "
말 없이 나를 꼬옥 안아줬었는데
" 그게 바로 너희 엄마였단다 "
"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언제나 그랬듯 "
홀로 강인하게 잘 살아가고 있더구나
" 그런데 그녀가 아직 걸음마도 떼지 않은 "
작은 사내아이를 내 품에 안겨줬을 땐
" 나는 두번다시 비행기와 하늘을 그리워 "
하지 않겠노라 신께 망설임 없이
맹세하고 있더구나
" 그 작은 사내아이는 바로 너란다 아들아 "
" 너는 내 삶에 전부였고 내가 살아가는 "
이유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거다
" 너를 먹여 살리기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
역경과 고난을 견뎌와야 했으나
" 너를 위해서라면 그런 것들 따위는 수천, "
수만번이라도 견뎌낼수 있었을거다
" 비록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며 서로 간에 많은"
갈등과 다툼들이 있어 왔다는거 잘안다
" 그렇다고 너를 사랑했던 마음이 단 한번 "
이라도 변한적 없었다는 것은
꼭 알아줬음 좋겠구나
" 한때, 나도 너와 같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
니가 어떤 마음으로 나치와 싸우고
있는지 너무나 잘알고 있지만
" 너희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내게 남은건 "
너 하나 뿐인데 나는 너마저 잃을까
매일을 기도로 보내고 있단다
" 이 못난 애비가 나라를 지키기위해 전장에서 "
열심히 싸우는 하나뿐인 자식에게 이런
말 밖에 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 부디 살아서 집으로 돌아와 다오 "
" 사랑한다 아들아 "
1941년 5월 10일, 런던상공에서 전사한
제11 전투비행단 소속 Stan Turner 대위의
유해에서 발견된 편지내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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