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일제시대 밤문화는 어땠을까?

2021. 5. 17. 20:54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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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일본 역시 1919년 정식으로 조선을 합병한 후 

 

가능한 한 일본 내지(內地)와 같은

생활 수준을 가지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온갖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싹 갈아엎고 만들려니

이게 왠 걸.

있는 거라곤 똥투성이 조선인들과

자기 땅조차 제대로 측량도 못해

중구난방인 지적도, 

비위생적인 건축물과

인프라라고 부르기도 조잡한 시설들 뿐.

다른 제국주의 시절 열강들이 겪은

개고생을 다시 겪게 생긴 거다.

사실 성진국 답게 성문제는

이미 합병 이전부터

인천 제물포에 일본인 전용 유곽을 세우면서

일본인 거류지에서

일본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식으로 합병한 후에

현재의 명동 일대를 혼마치(本町)로

만들고 점차 성매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아예

인천, 부산 뿐만이 아니라

경성(지금의 서울)과 각 군 주둔지 근처에

정식으로 유곽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남산을 끼고

군이 주둔하는 동시에

유곽을 건설할 부지를 찾고 있었는데 

거기에 적합했던 곳이

조선 시대에는 금위영의 화약고와

남소영 등 군사시설이 있었던

현재의 동국대 근처 장충단이 유력했다.

이전 짤의 지적도를 3D화 한 지도.

해방 후 일본 문화의 잔재를 없앤다고

묵정동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아무튼 이 지역은 조용하고

조선인들의 폭동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어서 

군 주둔지로서는 좋은 곳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현재 동국대 일대의

신마치 유곽의 모습이다.

똥덩어리나 굴러다니던 남산 뒷편을

깔끔하게 정비하고 

경성에 헌병 사령부와

60연대가 주변에 주둔하게 되자 

슬슬 일해보겠다고 달려드는

여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물론 합병 이전부터 관기와 같이

기생들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체계화된 성매매 여성은 아니었고,

1917년부터 경성에는 이미 

현재의 남대문 경찰서 근처에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나카노신지가 존재했기 때문에 

 

이를 폐지하고 신마치 유곽에

일본인 구역과 조선인 구역을 

나누어서 수용하기로 했다.

위에서 기술한 신마치 유곽 정비 후

조선인 성매매 여성이 급증하는데 

이것을 두고 일부 여성계 학자들은

"일제가 강제로 조선 여성들을 성노예로 만든 결과다"

라고 비난하지만,

실제 상황을 알고보면

전혀 옳지 않은 이야기다.

당시 기생을 부르는 가격은

기생이 시간당 1원 50전,  

이게 어느 정도의 가격인고 하니

담배 한 갑이 3전이었던 시절이었으니

상당히 큰 가격이었다.

 

그런 돈벌이를 위 짤처럼

돈많은 사람이면 아무나 좋다는

조선 여성들이 가만히 놔둘리가 없어서 

상당한 수의 여성이 기생이 되고자 몰려들었다.

사람 마음이 이왕 파는 거

몸 덜 굴리는 텐프로에서 일하고 싶지

2차 전문인 오피에서
몸 굴리고 싶지는 않은 법.

기생들에게 노래, 춤 등을 가르치기 위한

기생 권번이 평양과 경성에 각각 설치되었다.

기생이 되기 위해

열심히 수업을 하는 기생 후보생들.

수업은 제법 힘든 편이지만

이를 극복하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

지금의 아이돌급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기생들을 모델로 사진 엽서등이

잘 팔리기도 했는데 위 짤은 

당대 탑 급 중 하나였던 장연홍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당대 탑 티어인 윤채신

노은홍

지금의 미적 감각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니

이 점은 양해하기 바라겠지만, 아무튼 

이런 당대의 탑급 기생들은 책갈피나

사진 엽서, 화보 등의 모델로 잘 팔려나갔고 

여기에 기생하는 문학 청년들이 쓰던

작품 일부가 우리가 문학 시간에

배우는 교과서에 실려있기도 하다.

참고로 일제 시대에 좌파 놈들이 밀어대는

민족 가요 아리랑이 일본의 손으로 

민간에 구전되던 것을 기록하여

나운규의 영화를 계기로

대중에 보급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오히려 현재에 이르러 본래 8절까지 있던

아리랑을 3절로 줄이고

나머지는 일반인들이 모를 정도로 

실전된 상태라고 한다

당시 기생들은 춤, 노래로 연회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이벤트 걸의

역할도 겸했기 때문에 

다소 가격이 비싼 것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보다 클래스가 낮은 창기나 작부는

위 짤처럼 불려가서 수청을 드는 건 같지만, 

접대하는 대상의 경제력이나

지위가 낮은 편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신마치 유곽에

일본인 구역과 조선인 구역을 나누어 놓으니 

일본인 구역은 항상 청소가 잘되어 깔끔하고,

조선인 구역은 똥 오줌이 뒹굴고 

토사물이 치워지지 않은 상태로

놓여있는 상태였다는 거다.

이런 사실은 당시를 묘사한 김달수의

"현해탄"이나 다나카 히데미츠의 "취한 배"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후에 유곽들은 점차 확대되어

조선 반도에서는 회령 최북단에도

설치될 지경이었고, 

현재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제 시대가 일반 노동자들에게

가혹한 것이 아니어서 

평소 신마치 유곽의 매상이 2천원 정도 나올 때

명절이 되면 6~7천원 가량의 매상이 나왔다고 하며,

 

이 대부분의 수익이 일반 노동자들의

급여에서 나왔다고 한다.

원산 유곽의 모습.

이처럼 일반 노동자들이

힘껏 돈 벌어서

유곽에 소비할 여력이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합병 이전의 조선의 밤문화가

정상적이었는가 하면 그건 전혀 아니다.

일제 시대에도 속칭 "들병이" 가

남아서 기승을 부렸다고 한다.

위 만화는 당시 신문에 들병이의

범죄 수법을 희화 한 것인데,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각목" 이다.

특히 전라도나 충청도 일대에서

기승을 부렸는데,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여성이 접근해서 

병에 받아온 술을 들고가 따라주며

줄락말락 하며 밀당을 하다가

취하면 죽이고 가진 짐을 뺏은 뒤 

시체는 암매장을 하는 식이었다.

여기엔 보통 남편도 가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오랜 범죄를 근절한 것도

일제 때였으니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게다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존재하지만,

 

공창제에 속하지 않고 불법으로 영업하는 

성매매 여성들이 존재했다.

보통 다락방 등에서 2차 전문으로 운영했는데,

혹시라도 80년대에 서울에

거주한 자둥이들 중에 

다락방을 본 기억이 있다면

그런 곳에서 관계를 맺었다고

상상해보면 될 거다.

일제 시대가 많은 학자들이나

좌파들이 묘사하는 것처럼

암울하고 억압된 시절이라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며, 

밤문화의 측면으로 보자면

오히려 당시 면천한 일반 노동자들이

어찌어찌 돈을 모아 떡이라도 칠 수 있도록

공창제를 실시하고 위생 수준을 개선하며

제도를 정비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독립운동을 한답시고

부짓집이나 기생들에게 돈을 걷은 다음

그 돈들고 유곽에 가서

자기 불R에서 X물이나

독립운동시키던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부분이 더 암울한 일이다.

그렇다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시대에

이루어질 승산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진짜로 독립운동을 한 열사들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실 자체를

말살하거나 왜곡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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