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진짜 이유...5부

2022. 2. 13. 19:00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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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가강 너머에는 남은 것이 없다"

"스탈린그라드가 마지막 방어선이다!"

"이곳이 무너지면 소련은 끝장인줄 알아라!"

도시는 완전 박살이 난 상태였고

독일군은 어렵지않게

이길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련은 포기하려는 

낌새를 보이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소련은 장거리전을 선호하던 독일군의 

전술을 역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독일군에게 기동력과 넓은 공간이 필요했는데

소련은 그 공간을 주지 않기로 한것이다.

그렇게 소련은

여러개의 돌격대를 꾸렸고.

이 전술은 일명

'적 껴안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적에게 최대한 가까이 붙어서

포격이나 폭격을 못 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독일군은 초근접전으로

소련군과 마주쳐야 했고

폐허 곳곳에 배치된

소련의 저격수들에게

고통을 받아야 했다.

어림도 없지!

하지만 소련군은 근접전을 치루기위해

많은 희생이 따를수밖에 없었다.

저글링때처럼 밀려오는 소련군을 향해

독일군은 기관총을 난사하면 되는 것이다.

병력을 계속 때려넣다보면

언젠간 뚤린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소련군은 포기하지않고

달려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하라는 말이다!"

"단 한평의 땅조차도 내주어선 안돼!"

소련은 꽤 오랫동안 도시를 지켰지만

독일군이 점령한 지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스탈린그라드가 거의

독일군 손에 넘어온 셈이다.

11월 스탈린그라드의 90%가 

독일군의 손에 들어온 시점에서

전투는 사실상 끝난 시점이었고

소련의 겨울이 시작 되었다.

하지만 독일군은 영하30도에 달하는

심각한 추위에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않았고

물자가 떨어져가고 있었으며

몇 달씩이나 진격을 멈춰야했다..

주변은 황무지였고

소련군이 후퇴할때마다 

시설을 파괴했기때문에

보급만에게만 의지해야할 터였다.

하지만 소련군은 여전히 

포기할줄 모르고 덤벼들었고

그나마 남은 10%의 땅을 필사적으로

지켜내고 있었다.

그렇게 소련군의 반격은 완전히

독일군의 허를 찔러버렸는데

독일군은 100만 명이 넘는 소련군이

전선 모든 곳을 공격해오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공세였다.

엄청난 수의 전차와 포격이

돌파지점들에 집중되었다.

모든 독일군은 충격으로 굳어버렸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여태까지 이런일은 없었는데" 라며

독일은 크게 속았던 것이었다.

최소한의 병력으로 

스탈린그라드를 방어하는동안

뒤에서 엄청난 병력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튼튼할것 같았던 독일군 점령지는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일단 후퇴해야 할것같습니다!"

"어림도 없지!!!! 무조건 뚫어!"

"미개한 공산주의놈들한테서 후퇴할순없다!"

"이겨라 이길수 없다면 죽어라!"

그렇게 독일군 병력이

전멸이 뻔한 상황인데도

장교들은 죽어가는 병사들을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다 딱봐도 좆됐는데"

"독일놈들 왜 항복 안하지?"

"나도 그만싸우고 싶다고"

"히틀러 씨불 집에 안보내준다 ㅠㅠ"

"이거 이러다가 의미없이 전부 죽고말거야"

"항복하겠소..."

결국 히틀러의 명령을 잘따르던

파울루스는 원수로 진급하자마자

스탈린그라드에서

항복을 선언하고야 만다.

그렇게 독일군의 3/1만이 살아남을수 있었다.

나머지는 총에 맞거나 굶거나

추위로인해 다 죽어버린 뒤였다.

항복으로 살아남은 독일군의 숫자는

91000명이였고 소련으로 끌려가

노역에 시달려야했다.

"항복하지 말랬잖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처절하고 더러운 전투였다.

러시아군의 사상자는 100만명이 넘었고

독일군의 사상자는 80만명정도 였다.

소련인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모국을 위해 싸웠다.

수많은 소련 남녀들이 

독일군을 막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

더 이상 잃을게 없었던

소련인을 막지 못한것이다.

스탈린그라드에서 패배한 독일은

더 이상 진격은 커녕

후퇴만 거듭할 뿐이었다.

 

그렇게 전쟁의 판도는 뒤집히고..

영국과 미국은 대규모 상륙작전을

준비하게 되는데...

6부에서 계속...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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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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