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만행 서울대병원 학살사건을 알아보자
2020. 7. 15. 19:06ㆍ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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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교과서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매우 안타까운 사건이야.
당시 서울내에 있는 병원에는
1945년부터 1950년 6월 25일까지
크고 작은 교전 중에 부상당한
국군 장병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가장 끔찍하고 잔혹하게 살해된
서울대병원이 있었지...
1950년 6월 28일.
북한군이 38도선을 넘어와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다.
당시 한국은 서울을 너무나 어이없이 빼앗겼고
인도교를 폭파시키는 바람에
당시 우리 군의 체계적인 수송 또한 없었다.
당시 서울대병원에는 부상병들,
일반인들과 위문 가족들
그리고 경비병만이 있었다.
위 사진은 당시 학살사건이 자행되었던
혜화동 서울대 병원의 모습.
당시 병원 방어를 위해 남아있던
육군 보병 1개소대와
작은 경상을 입은
부상병 80여 명 등이
소대장 지휘 하에 서울대병원 뒷산에서
전투를 했으나 모두 전사했다...
모두 전사하는 바람에 이제 병원에 남은건
중상을 입은 부상병들과
힘없는 민간인들만 있었다고 한다.
병원을 점령한 북한군중에서
한 북한군 중좌가
"여기 원수 앞잡이 놈들이 있다"라고
선동을 시작했고
이들은 병원을 순회하면서
움직일 수없는 부상병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게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는지
한방에 부상병들을 내몰아놓고
한꺼번에 총으로 쏴 죽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총을 가지고있는
국군 장교들은 자살을 했다고 한다.
문제는 일반인들까지 무참히 살해했고
환자복만 입고 있으면 무차별 살인을 저질렀다.
정신병동까지 쳐들어가서 살해했다.
위문가족들 까지도..
이 학살을 3시간동안 자행을 했는데
그래도 부족했는지 죽은 시체에 총검을
더 찔러서 확인 사살까지 했다.
잘 숨어있던 부상병들까지
끝까지 찾아내어 죽이거나
보일러실로 끌고 가
그 무거운 석탄더미에 깔려 죽게 만들었다.
한 여름에 시체가 20일동안 방치가 되어
시체 썩는 냄새가 서울대 병원을 가득 채웠다.
이걸 보다 못한 북한군은
당시 창경궁 앞 큰 길가에
시체를 쌓아두고 기름 부어 불태웠다.
당시에 서울대병원에는
1000명의 부상자가 있었으며
국군장병 100여명 그리고 900명은 민간인 들이었다.
북한군은 포로들의 인권을 보장해줘야 하는
제네바 협약을 싸그리 무시했다.
지금도 북한군은 이 협약을 가르치지 않는다.
큰 문제다....
이 학살의 주동자는
바로 가장 처음 서울에 입성한
류경수 탱크사단이었다.
김일성 김정일이 살아 생전에
가장 아끼는 부대가 바로 이 부대다.
류경수는 포로학살을
단 한 번도 금지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한 후에 이 소식이 전해져서
서울을 철수한 북한군은
또다시 몇 차례 학살을 하고서
이북으로 도주했다.
혹시나 서울대병원 혜화동이나
연건 쪽을 지나는 자둥이들 있으면
마음속이라도 애도해드리자.
이분들이 자신들의 부상을 무릅쓰고
부상당한 전우와
그 가족들까지 지키려고 목숨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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